1지상권 — 남의 땅에 내 건물을 두는 권리
남의 땅에 내 건물을 짓고 싶으면 방법이 두 가지입니다. 땅을 빌리는 임대차계약을 맺거나, 지상권을 설정받는 것입니다. 앞의 것은 채권이고 뒤의 것은 물권입니다. 이 차이 하나가 이 절과 다음 절에서 나오는 결론을 거의 다 정합니다. 물권이므로 땅 주인이 바뀌어도 그대로 남고, 물권이므로 땅 주인의 동의 없이 남에게 넘길 수 있습니다.
이 절은 지상권이 어떤 권리이고 얼마나 오래 가는가를 다룹니다. 넘기고 없애는 이야기는 다음 절입니다.
1-1조문이 정한 것 — 민법 제279조
한 문장이지만 요건이 3가지 들어 있습니다.
지상권 (제279조)
요건
(1) 타인의 토지일 것
(2) 건물 · 공작물 · 수목을 소유하려는 목적일 것
(3) 그 목적을 위해 토지를 사용할 것
효과
그 토지를 사용할 수 있는 물권을 가진다(2)를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지상권은 땅을 쓰는 권리인데, 그냥 쓰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소유하기 위해 쓰는 권리입니다. 농사를 짓거나 주차장으로 쓰려고 남의 땅을 빌리는 것은 지상권이 아니라 임대차입니다.
1-2조문이 남긴 것 — 성립에 필요 없는 것 2가지
제279조를 다시 읽어 보면 없는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첫째, 지료가 없습니다. 조문 어디에도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료를 정하지 않은 무상의 지상권도 유효하게 성립합니다. 임대차는 차임이 계약의 요소여서 차임 없는 임대차가 성립하지 않는 것과 다릅니다.
둘째, 지상물이 없습니다. 조문은 「소유하기 위하여」라고 적을 뿐 「소유하고 있는」이라고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설정계약 당시에 건물이나 공작물이 아직 없어도 지상권은 유효하게 성립합니다. 앞으로 지을 생각으로 먼저 지상권을 설정받는 것이 가능합니다.
지상물이 없어도 성립한다는 점과 짝을 이루는 것이 부합의 예외입니다. §0-5에서 본 민법 제256조 단서가 「타인의 권원에 의하여 부속된 것」을 부합에서 빼 두었는데, 지상권이 바로 그 권원입니다. 지상권자가 세운 건물과 공작물은 땅 주인의 것이 되지 않고 지상권자의 것으로 남습니다.
1-3조문이 정한 것 — 존속기간의 최단 30년·15년·5년
지상권의 존속기간에는 아래쪽 한계만 있습니다. 위쪽 한계, 곧 최장기간을 정한 조문은 없습니다.
목적물이 무엇이냐에 따라 3단계입니다.
| 무엇을 소유하려고 | 최단존속기간 | 예 |
|---|---|---|
| 견고한 건물 또는 수목 | 30년 | 석조·석회조·연와조 건물 · 조경수 · 과수 |
| 그 밖의 건물 | 15년 | 목조 건물 · 조립식 건물 |
| 건물 이외의 공작물 | 5년 | 담장 · 광고탑 · 송전탑 |
제2항이 이 3가지 기간을 강제합니다. 20년으로 약정하고 견고한 건물을 지으면 그 약정은 무효가 되는 것이 아니라 30년까지 늘어납니다. 당사자가 정한 것보다 지상권자에게 유리한 쪽으로 법이 밀어 올리는 구조입니다.
기간을 아예 정하지 않은 경우는 다음 조문이 받습니다.
기간을 정하지 않았다고 해서 아무 때나 그만둘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280조의 최단 기간이 그대로 존속기간이 되므로, 견고한 건물이라면 30년 동안은 존속이 보장됩니다. 2015-50 ⑤가 「존속기간을 정하지 않으면 토지소유자가 언제든지 소멸을 청구할 수 있다」고 적었는데 틀린 서술입니다.
제2항은 목적물의 종류조차 정하지 않았을 때의 기본값입니다. 제2호의 15년으로 봅니다.
1-4판례가 채운 것 — 최단존속기간이 붙지 않는 지상권
제280조 제1항 제1호는 「견고한 건물이나 수목의 소유를 목적으로 하는」이라고 적습니다. 그러면 이미 남이 지어 놓은 건물을 쓰려고 설정하는 지상권은 어떻게 되는가. 조문의 문언만 보아서는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판례는 최단존속기간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제280조 제1항의 최단기간 규정은 지상권자가 자기 소유의 건물을 새로 짓거나 수목을 심어서 토지를 이용할 목적으로 지상권을 설정한 경우에만 적용된다는 것입니다(대법원 1996. 3. 22. 선고 95다49318 판결). 그러므로 남의 연와조 건물을 사용하려고 설정하는 지상권은 30년보다 짧은 기간으로도 유효합니다.
1-5건물이 없어져도 지상권은 남습니다
지상권은 토지를 사용하는 권리이지 건물에 딸린 권리가 아닙니다. 그래서 그 위의 건물이 무너지거나 불타 없어져도 지상권은 존속기간 동안 그대로 남습니다. 기존 건물의 소유를 목적으로 설정된 지상권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은 기간 동안 다시 지어 소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뒤집어 「기존 건물의 소유를 목적으로 설정된 지상권은 그 건물이 멸실되면 소멸한다」고 적은 선지가 2025-59 ④로 나왔습니다.
1-6구분지상권 — 땅속과 공중에만 미치는 지상권
지상권은 원칙적으로 토지의 상하 전부에 미칩니다. 그런데 지하철이나 송전선처럼 일정한 높이 또는 깊이만 쓰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 쓰는 것이 구분지상권입니다.
구분지상권 (제289조의2)
요건
(1) 지하 또는 지상의 공간일 것
(2) 상하의 범위를 정할 것
(3) 건물 기타 공작물을 소유하기 위한 것일 것
(4) 제3자에게 사용 · 수익할 권리가 있으면 그 전원의 승낙을 받을 것
효과
정해진 범위에서만 지상권이 성립한다(3)에 수목이 없다는 점을 확인하십시오. 제279조는 「건물 기타 공작물이나 수목」이라고 적는데 제289조의2 제1항은 「건물 기타 공작물」까지만 적습니다. 나무는 땅에 뿌리를 내려야 하므로 층을 나누어 소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4)의 「전원」도 조문 문언 그대로입니다. 이미 임차인이 있고 그 임차권 위에 저당권까지 있으면 임차인과 저당권자 둘 다의 승낙이 필요합니다.